공공기관 내부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평가 기준을 조작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한국자산관리공사 내부 직원들이 매각주간사 선정 과정에서 평가표를 몰래 수정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이들의 행위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보고 유죄를 선고했는데요. 오늘은 이 판례를 통해 평가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어떤 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공기업 매각 평가표 조작 사건의 전말
대우건설 주식 매각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
2000년대 초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대우건설 주식을 국제입찰을 통해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에 앞서, 어떤 금융기관이 매각 업무를 담당할 것인지 ‘주간사’를 선정해야 했죠. 선정 절차는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공사 내부 인원들로 구성된 1차 선정위원회가 3~5개 업체를 추립니다. 이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2차 선정위원회가 최종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1차 선정위원회 단계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평가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면, 삼성증권 컨소시엄이 더 유리한 결과를 얻게 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공사 측 일부 인사들은 엘지투자증권 컨소시엄이 주간사로 선정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엘지투자증권이 배드뱅크 사업 추진에 도움을 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담당자들은 기존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의결한 평가표를 임의로 수정해 엘지투자증권에 유리하도록 배점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민간 전문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수정된 평가표를 제출해 평가를 진행하게 했습니다.
통행로 철거로 상가 영업 방해 업무방해죄? 👆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6도1721 판결결과
판결 결과
대법원은 피고인들에게 형법 제314조 제1항(업무방해), 제313조(위계), 제30조(공동정범)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각 벌금 1천만 원, 미납 시 일 5만 원을 기준으로 한 노역장 유치가 명령되었습니다. 판결의 의미는 단순한 평가표 조작이 단지 내부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의 공정한 업무수행을 방해한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판결 이유
법원은 먼저 ‘위계’의 개념에 대해 설명합니다. ‘위계’란 상대방을 착각하게 만들어 그 오해를 이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업무방해죄는 실제로 업무가 중단되어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이 방해받을 위험만 있어도 성립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민간위원들이 캠코 내부에서 의결된 공식 평가표를 기준으로 심사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조작된 평가표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판단을 오도시킨 ‘위계’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됐습니다. 특히 이로 인해 주간사 선정업무의 공정성이 위협받은 점에서 ‘업무방해의 위험’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것이죠.
또한 피고인 1은 직접 평가표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부하 직원들인 피고인 2와 피고인 3과 함께 엘지투자증권을 밀어주자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수정된 평가표와 결과를 보고받고 결재까지 했습니다. 따라서 비록 직접 행위자는 아니어도, 공모공동정범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의실 점거 업무방해죄? 👆평가조작 사례에서 배울 점과 대응 방법
비법률적 대처방법
피해자 입장
공공기관의 입찰과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이 의심된다면, 단순히 항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평가표, 배점기준, 심사과정에서의 설명 내용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심사위원이나 담당자와의 대화 내용을 메모로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안서 제출 이후에는 평가위원회 회의록 등의 정보공개청구를 활용해 의심스러운 점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당 절차가 명백히 왜곡되었다고 판단되면, 공익제보나 감사요청을 할 수 있고,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도 실질적인 압박 수단이 됩니다. 특히 결과에 따라 큰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입찰에서는 빠르게 법률전문가와 협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고인 입장
만약 자신이 평가표 조작에 가담했거나 지시를 받았다면, “모두가 하는 일이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가능한 한 조기에 위법성을 인정하며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향후 처벌 수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증거가 명확한 경우에는 오히려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자신이 전혀 몰랐고 명백한 보고조차 받지 않은 경우에는 증거와 진술을 통해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업무상의 통상적인 결재 절차인지, 실질적인 공모관계가 있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구분해 대응해야 합니다.
법률적 대처방법
피해자 입장
법적으로는 형법 제314조 제1항의 업무방해죄 적용 여부가 핵심이 됩니다. 이때는 ‘업무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이 방해받았는가’가 중요한데, 단순한 감정이나 의혹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위계에 해당할만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입찰이나 공모에서 탈락한 업체의 경우, 공정성 훼손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음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업무방해죄는 고소가 필요 없는 공소제기 가능 범죄이므로, 수사기관에 진정 또는 고발을 통해 수사를 촉구하는 방법이 실질적일 수 있습니다.
피고인 입장
이미 수사나 재판에 이르렀다면, 위계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자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정된 평가표가 정식으로 다시 의결됐으며, 민간위원들이 그것을 이해했을 가능성’ 등을 주장하는 방식이 있겠죠. 하지만 이번 판례(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6도1721)는 그 가능성 자체보다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사실 은폐’가 있었는지에 더 중점을 뒀습니다.
따라서 조작 사실이 있었다면 단순한 방조가 아니라 공모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방어 전략을 신중하게 세워야 합니다. 만약 직접적인 관여가 없었다면, 그 행위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 묵인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주장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사건은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행정조작이더라도 그로 인해 외부 민간인의 판단이 흐려지고 업무가 왜곡되었다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판례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해당 사건은 [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6도1721 판결]입니다.